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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 참~' 개난감...펜티 사말라티의 '무음의 소통'

등록 2020-02-18 11:33:56

'전통흑백 사진의 장인' 핀란드 대표 사진 작가

23일부터 공근혜갤러리서 한국 두번째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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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펜티 사말라티, South Africa 2002 ⓒPentti Sammallahti, 사진=공근혜갤러리 제공. 22020.2.1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개난감'이다. 대체 뭐라고 하는 것일까? '거지 철학자' 디오게네스처럼 '해를 가리고 있는 개님의 그림자를 치우라'고 하는 것일까?

흰 강아지가 늘어트린 긴 그림자에서 검은 새 한마리가 버티고 서서 입을 크게 벌린채 도발하고 있다.

그 새를 내려다보며 난처하다는 듯한 개의 표정도 압권이다. '허어 참~' 이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사진 작가는 또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그들은 사랑스럽고 쉽고, 관찰하기에 재미 있습니다."

핀란드를 대표하는 사진 작가 펜티 사말라티의 장기다.그는 동물들끼리, 혹은 동물과 사람 사이에 의사 소통이 이루어 지고 있음을, 사진을 통해 시각적 효과만으로 무음의 소통을 상상하게 만든다.

 ‘전통 흑백 사진의 장인’ 이라는 별칭이 있지만, '시간 사냥꾼'이 더 어울릴듯 하다. 모든 장면들은 연출된 게 아니다. 순간 포착을 위한 수 많은 시간과 예술가의 직감을 총 동원한 기다림의 결과다.

그의 두 번째 한국 개인전 ‘Beyond the wind’전이 오는 23일부터 서울 삼청동 공근혜갤러리에서 열린다.대표작 20여 점과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소개되는 30여점의 근작들이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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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펜티 사말라티, Iceland (Cats looking up at hanging fish), 1980© Pentti Sammallahti 사진=공근혜갤러리 제공[email protected]

사말라티의 작품들은 인간 보다는 동물들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동화 속 주인공이자 사람들을 대변하는 듯한 역할을 한다. 동물들을 통해 비춰지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훈훈하고 정겨운 감수성을 포착한 초자연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여러 마리의 고양이가 동시에 올려다 보고 있는 사진도 훈훈하다. 배 위에 걸려 있는 생선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이 사진은 마치 생선의 부스러기라도 떨어지기를 원하는 간절한 고양이들의 바람이 묘하게 느껴진다.

이번 전시 작품 가운데 '서울' 은 2016년 작가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당시 촬영한 작품. 뉴욕, 파리, 핀란드 등 에서 먼저 소개되었던 작품은 공근혜갤러리 바로 옆에 위치한 청와대 담장을 따라 자란 소나무와 석양을 배경으로 날아가는 까치를 촬영한 것.

까치가 날아가는 찰나의 순간, 필름 카메라의 감도, 셔터, 조리개의 완벽한 조절로 새의 날개 디테일까지 담아냈다는 것이 놀랍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서울의 풍경이지만 펜티 사말라티의 눈과 손을 거쳐 나온 이 작품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날로그 흑백 사진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1950년 핀란드 헬싱키 출신인 펜티 사말라티는 전통 흑백사진과 은염 인화의 장인으로 유명한 작가다. 현재 스칸디나비아 출신 사진가들에게서 가장 존경 받는 인물로 꼽힌다.1991년부터 몇 년에 걸쳐 완성된 러시아 북서쪽, 백해지역에 위치한 슬로브키에서 촬영한 작품들로 많이 등장하는 개와 새를 중점으로 '개들이 있는 길' 사진으로 유명세를 탔다. 1975년, 1979년, 1992년, 2009년 등 네 차례에 걸쳐 핀란드 국립사진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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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펜티 사말라티, Solovki White Sea Russia 1992 Pentti Sammallahti, 사진=공근혜갤러리 제공. 2020.2.18. [email protected]


올해 70세가 된 작가는 ‘전통 흑백 사진의 장인’ 이라는 별칭에 맞게 헬싱키에 있는 본인의 암실에서 아주 정교한 과정을 거쳐 직접 인화작업을 한다.

“암실 인화 작업은 사진을 촬영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나는 아직까지도 화학 약품 냄새로 가득한 작고 어두운 암실로 은퇴할 때 가장 행복하다.” 20cm 안 밖의 작은 인화지 위에, 흑과 백 사이에서 존재하는 수많은 회색의 계조들을 매우 풍부하게, 하나 하나 작은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고 살려 낸다. 그의 사진에서 느껴지는 깊은 색조와 질감은 작가의 인내와 장인정신을 여실히 잘 보여준다.

 25x 30 cm 작은 사이즈의 수작업만 고집한다. 명성과는 대조적으로 사진 작품가격은 100만원에서 300만원 안팎이다.

공근혜갤러리에 따르면 자신의 작품 가격이 올라가는 것을 거부하며, 에디션을 제한 시키지도 않는다. 유럽과 미국의 갤러리들이 그의 전시를 유치하기도 힘들지만 작품이 팔려도 늘 여행 중인 작가와 연락이 닿지 않아 애를 먹는다. 

공근혜갤러리 역시 2016년 그의 첫 개인전을 유치하는데도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공근혜 대표는 "그 동안 많은 한국 팬들의 기다림 끝에, 4년 만에 사말라티의 두 번째 개인전을 연다"며 "그러나 아쉽게도 노장의 건강 악화로 한국 방문이 어렵게 되었다. 작가는 현재 따뜻한 유럽 남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은 내 취미입니다"라는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를 원한다.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하는 그의 흑백 사진은 '위로'다.  우리의 시선을 가져가 보듬어 따듯한 마음으로 돌려주는 마법같은 작품이다. 전시는 3월22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